[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겨울 산행은 멋진 상고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 어렵기도 합니다. 추위가 심할 때는 슬기말틀(스마트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기도 귀찮을 때가 있습니다. 스마트워치나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사람이 가끔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문제는 3천만 원짜리 명품 시계나 시중에 단돈 만 원하는 시계나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60평이 넘는 으리으리한 집에서 잠을 자거나 15평 원룸에서 잠을 자거나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반 평 남짓한 침대인 것은 똑같은 사실이고요. 넓은 집이 건강한 꿀잠을 제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천만 원하는 명품 모피코트를 입으나 몇십만 원하는 오리털 파카를 입으나 체온을 적절하게 유지하며 비바람을 막아주는 것은 같습니다. 가끔 술을 마시지만, 가장 좋아하는 주류는 소주입니다. 얼마 전에 지인이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500만 원짜리 술을 먹어 보기도 했지만 5천 원하는 소주와 취하는 것은 같았습니다. 퇴직 무렵에 차를 바꾸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차라고 생각하고 무리해서 좋은 차로 바꾸긴 했는데 대형 고급 차나 소형차나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것은 같았습니다. 그러니 우린 행복이 물질적인 것에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늙어서는 탐욕을 경계해야 합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욕심을 버리지 않는 것을 노욕(老慾)이라고 합니다. 그건 노추(老醜, 늙어서 추하게 됨)가 되기 쉽기 때문이지요. 물론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하고자 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이 개인과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지요. 그런데 분수에 넘치고 도가 지나치면 탐욕이 되고 나이가 들어서도 개선이 되지 않으면 노욕이 됩니다. 앙드레 지드는 이런 말씀을 남깁니다. "늙기는 쉬워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 청년보다 노년이 죽음에 더 가깝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그러면 욕심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것보다는 많은 부분을 후배들에게 넘겨주고.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것인데 인생을 그렇게 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요. 우린 물러날 줄 모르고 내려놓을 줄 모르고 움켜쥐려고만 하는 노욕이 심한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젊은이들에게 양심도 없는 자나 제 욕심만 가득 차고 관용도 없는 그런 존재로 보일 뿐이지요. 인생은 삶의 종결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생이 끝나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권력의 잘못을 단죄하지 못하더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럽 한 기자가 한국인에 대한 평가입니다. 세 가지에 미쳐 있고 한 가지가 없으며 한 가지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스마트폰, 공짜 돈, 트로트에 미쳐 있고, 생각은 없으며, 거짓말만 존재한다는 다소 냉소적인 이야기입니다. 물론 한 개인적인 의견에 동조하거나 동의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그도 대한민국 일부분만 보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시각도 존재한다고 하는 타산지석의 느낌으로 내용을 인지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우민정책(愚民政策)이라는 말이 회자한 적이 있습니다.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들어서 통치를 쉽게 만드는 정책을 의미하지요. 독재자나 전제주의가 식자층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뒤에 지식인을 추방하거나 제거한 까닭이기도 하지요. 피통치자가 생각하는 순간부터 전권을 휘두르는 것이 힘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빵과 서커스를 제공해서 대중을 통제했습니다. 먹을 것과 즐길 것을 제공하면서 대중의 시각을 딴 데로 돌리는 것이지요.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려면 대중에게 낮은 질의 교육을 제공하면 됩니다. 오늘날도 스포츠와 종교, 텔레비전과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생명의 위대함은 찬양받아 마땅합니다. 산을 오르다 보면 암석투성이인 큰 바위 위에 의연하게 서 있는 소나무를 봅니다. 어떻게 그렇게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지 경외감이 들기도 하지요. 조선시대 김시습은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바위 위에 솟은 소나무, 푸른 잎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뿌리는 바위 깊숙이 박혀 있어 흔들리지 않는다" 바위 위에 자란 소나무는 강인한 생명력과 굳은 의지의 상징입니다. 바위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바람과 비, 바닷물에 맞서 살아가니까요. 검붉은 바위 색과 더불어 푸른 잎으로 주변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도 합니다. 수월재(水月齋) 김현룡 선생님도 이런 시를 남기지요. 불긍동부토(不肯同腐土) 썩은 흙과 함께함을 즐기지 않아 찬암탁근심(鑽巖巖根深) 바위를 뚫고 뿌리 깊이 박았네. 직립간소간(直立干霄幹) 곧게 솟아 하늘을 찌르는 줄기 부근감상침(斧斤敢相侵) 도끼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네. 흙이나 수분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바위틈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실로 생명의 경이로움, 신비로움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조한 환경 속에서도 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의 눈은 앞을 향해 있습니다. 남을 보기에 쉽지만, 자신을 보기는 불가능한 구조로 되어 있지요. 반사경이나 거울을 통하지 않고는 자신을 온전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린 나 보다 남을 먼저 바라보게 됩니다. 그 판단의 기준엔 항상 자기가 있지요. 문제는 남을 판단하기 좋아하면 자만심만 커지는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든다는 것입니다. 오염된 물로 채워진 컵은 바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 물을 비워내고 깨끗이 씻어낸 후에야 컵을 다시 사용할 수 있지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자신만의 견해를 비워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을 바르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세상을 밝게 볼 수 없습니다. 문제는 세상을 더럽다고 인식할 수밖에 없지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려면 자기 안경을 닦아야 합니다. 좋은 사람은 좋은 사람을 만나고 따뜻한 사람은 따뜻한 사람을 만납니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기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일이 생깁니다. 그러니 마음을 어떻게 가지고 사느냐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누구나 세월을 살아냅니다. 하지만 같은 물을 먹고도 벌은 꿀을 만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춘천을 대표하는 문인 김유정의 본관은 청풍입니다. 10대조가 대동법 시행에 크게 공헌한 명재상 김육이고, 9대조는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청풍부원군 김우명입니다. 집안도 춘천에서는 꽤 명망 있고 부유한 지주였지요. 그런데 형 유근이 집안의 재산을 탕진하여 가난에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병으로 인해 춘천으로 내려온 그는 들병이들과 어울리며 술에 빠져 살았다고 하지요. 김유정 대부분의 단편은 그 시절에 쓰입니다. 김유정은 박녹주라는 판소리 명창을 사랑했습니다. 이미 남편이 있었던 박녹주는 김유정을 받아 줄 수 없었지요. 요즘 스토커 수준으로 박녹주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편지와 혈서를 보내지만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김유정은 삶을 다할 때까지도 박녹주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29살로 요절했을 때 방안에는 '녹주, 너를 연모한다'라는 혈서가 벽에 붙어있었다고 하지요. ‘들병이’는 매춘부를 부르는 다른 이름입니다. 병을 들고 다니면서 잔술을 팔고, 뜻이 맞으면 매춘까지 이르는 비교적 천한 직업을 의미합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삶이 팍팍했던 시절에는 자신의 의지와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 애환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린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재수 좋다거나 운수 좋다는 말을 씁니다. 재수는 한자로 ‘財數’라고 씁니다. 재물이나 좋은 일이 생길 운수라는 뜻이지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재물을 셀 수 없이 소유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뜻밖의 재물을 횡재했을 때도 재수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큰 사고를 당할뻔했는데 가까스로 피했을 때도 재수 좋다고 이야기하고 심지어 사람을 조롱하는 의미로 재수 좋음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 녀석 이쁜 마누라를 얻었으니, 재수가 참 좋아!." 이는 그 사람 능력 밖의 일을 성취했을 경우를 뜻하니까요. 저는 살면서 경품에 당첨된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옛날 아마추어 무선 햄을 할 때 회원이 12명이었는데 상품이 11개만 들어온 겁니다. 할 수 없이 제비뽑기했는데 제가 유일하게 꽝을 뽑은 사람입니다. 우린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일로 기쁨을 얻기도 합니다. 아파트를 나서는데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서 있다든지 건널목을 건너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바로 파란불로 바뀐다든지 주차 공간 때문에 헤맬 때 단 한 군데 나를 위한 듯 주차 공간이 보일 때 우린 소소한 행복을 느끼곤 합니다. 김광규 님의 <재수 좋은 날>이란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여행은 목적지도 중요하고 함께하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그게 못지않게 안내원도 중요합니다. 백두산 천지를 갔을 때 연변 출신의 안내원이 한번 보고 말 사람들임에도 식구처럼 여행단을 챙기는 것을 보고 적잖이 감동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이 "매화"였지요. 봄은 섬진강에서부터 옵니다. 양안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로부터 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추운 겨울, 매서움의 끝자락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순백색 고결함으로 다가온 매화야말로 봄의 환희입니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에서 매화를 1품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지요. '옛 선비들이 매화를 귀하게 여긴 것은 첫째는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 희소함 때문이고, 둘째는 나무의 늙은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며, 셋째는 살찌지 않고 마른 모습 때문이고, 넷째는 꽃봉오리가 벌어지지 않고 오므라져 있는 자태 때문입니다.' 봄이 되면 대부분이 벚꽃이나 개나리, 진달래 등의 봄꽃을 떠올리지만 누가 뭐래도 그 품격으로나 생명력 면에서 매화만 한 게 없습니다. 찬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고 살포시 얼굴을 내미는 매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생명의 신비이고 경이로움이니까요. 김진섭은 〈매화찬(梅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10일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십 년 넘게 이어지는 권력은 없다는 것이지요. 요즘 국회의원은 권불 4년이고 대통령은 권불 5년입니다. 나라의 100년을 계획해야 할 사람들이 코 앞만 보고 있으니 문제입니다. 요즈음 여의도를 보면 ‘우리’는 없고 ‘끼리’만 난무합니다. 국민과 나라는 안중에 없고 욕심에 점철된 파당만 존재합니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국민을 외치고 민생을 이야기합니다. 국민은 선거할 때만 반짝 주인이고 나머지 장구한 세월은 피지배자로 돌아갑니다. 기득권을 내려놓는다고 하면서 철옹성같이 자기 것을 움켜쥐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홈런타자라고 해서 매번 홈런을 치는 것은 아닙니다. 병살타도 치고 삼진도 당합니다. 국민가수로 매우 유명한 사람도 신곡을 낼 때마다 히트곡이 되는 것도 아니지요. 중국의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해 영원한 삶을 희구하였고 그의 왕국이 만년 가기를 원했지만 본인은 49살에 세상과 작별을 고했고, 진나라도 2세 황제가 즉위한 지 15년 뒤에 멸망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식재료 중에서 외국인이 매우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번데기, 깻잎, 오징어, 청국장이 그러하지요. 번데기는 그 생김새 때문이고 깻잎은 독특한 향이 익숙하지 않아서이며 오징어와 청국장은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외국 비행기 안에서 마른오징어를 뜯으면 비행기가 회항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맛난 오징어 냄새를 외국인은 사체 썩는 냄새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셈입니다. 오래되지 않은 옛날 강릉이나 삼척 앞바다에 가면 밤바다가 오징어 집어등<어화(漁火)>으로 환하게 수놓아지곤 했는데 요즘은 수온의 상승으로 동해안에서 오징어가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부를 가장 잘하는 물고기로는 문어가 꼽힙니다. 한자로 문어(文魚)로 글월 문(文)자를 쓰니까요. 왜냐하면 문어의 머리에는 먹물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놈 먹물께나 먹었구나." 옛 어른들이 지식인을 지칭하던 말이었고 문어의 대가리가 사람의 머리와 많이 닮아 있어서이기도 합니다. 잉크가 귀하던 시절에는 오징어나 문어의 먹물로 글을 썼는데 매끈매끈하니 잘 써졌다고 하지요. 문제는